우리는 오랫동안 평면의 세계에서 사고해왔다.
문자, 이미지, 문서, 화면까지 디지털 문명이 제공해 온 거의 모든 사고의 매체는 2차원 위에 놓여 있었다. 공간은 언제나 존재했지만, 그것은 사고의 언어라기보다는 구현의 결과물에 가까웠다. 무언가를 공간으로서 표현하려면 실제 물체를 만들거나, 오랜 시간 훈련된 3D 모델링 기술을 익혀야 한다. 그 비용은 너무 크고,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간을 ‘쓰는’ 행위를 하지 못했다. 공간은 상상되었지만 대부분 기록되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AR/VR과 메타버스는 너무 이른 답을 제시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공간 안으로 들어오면 새로운 사고와 행동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가정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간은 여전히 소비의 대상이었고, 다룰 수 있는 사고의 매체는 아니었다. 읽을 수는 있었지만, 쓸 수는 없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공간에 ‘쓸’ 수 있는 대상이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3D 모델링과 제작의 비용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공간 안에 놓아보거나 조합해 볼 수 있는 기본적인 재료 자체가 부족했다. 완성된 애셋은 물론이고, 반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템플릿이나 조립 가능한 기본 구조조차 제한적이었다. 그 결과 공간은 제한된 수의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장소에 머물렀고, 더 많이 보여졌을 뿐 더 많이 생각되지는 않았다.
사고는 언제나 외부화 비용이 급격히 낮아질 때 변해왔다. 문자가 등장했을 때 인간은 새로운 생각을 배운 것이 아니라, 기존에 가능했지만 유지할 수 없던 사고를 비로소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3D 역시 같은 위치에 있다. 우리는 공간을 이해하고 있지만, 공간을 기록하고 수정하고 공유하는 능력은 소수 전문가의 영역에 묶여 있다.
공간을 ‘쓰는’ 능력, 3D 생성 AI의 등장
3D 생성 AI의 등장은 이 지점을 바꾼다. 그것은 공간을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기술이 아니다. 공간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비용을 낮추는 기술이다. 크기, 거리, 동선, 배치 같은 공간적 관계를 더 이상 머릿속에만 두지 않고, 말하듯 외부에 놓아볼 수 있게 만든다.
공간을 쉽게 쓸 수 있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더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보다 더 빨리 틀린 생각을 버리기 시작할 것이다. 말로는 그럴듯했던 아이디어가 공간 위에 놓이는 순간 어색해지고, 설명할 수 없던 불편함이 즉각적으로 드러난다. 사고의 진보는 언제나 정답을 찾는 속도가 아니라, 오답을 버리는 속도에서 시작되었다.
이 변화는 모두에게 동시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글을 쓰지는 않지만 글이 존재하는 세상 위에서 사고하듯, 모든 사람이 공간을 창작하지는 않더라도 공간으로 설명하고 검증하는 사고 방식은 특정 영역을 중심으로 먼저 정착될 것이다.
게임: 내가 ‘쓰는’ 공간이 결과 그 자체가 되는 환경
그 변화가 처음으로 드러날 곳은 게임으로 보인다.
게임은 내가 쓰는 공간이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판단의 대상이자 결과 그 자체가 되는 드문 환경이다. 무엇이 옳은지는 설명이나 합의로 결정되지 않고, 실제로 겪어보는 순간 드러난다. 문서로는 충분해 보였던 판단이, 움직여보는 순간 어색해지는 경험은 게임 개발에서 낯설지 않다.
게임에서의 판단은 ‘움직여보는 순간’ 즉, 플레이 이전부터 치밀하게 계산된다. 실제 현업에서는 이미 플레이 이전의 단계에서 수많은 검증이 반복된다. 거대한 메카닉 구조물을 설계할 때, 아티스트들은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를 만들지 않는다. 부품을 이미지 단위로 정의하고 3D로 옮긴 뒤 직접 조립해보며, 비례와 구조, 전체 실루엣을 빠르게 확인한다. 막상 조립해보니 설득력이 부족하다면, 부품은 다시 디자인되고 다시 조립된다. 이러한 반복은 플레이 이전에 이루어지지만, 분명한 판단의 과정이다.
플레이는 이러한 검증 단계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밀도가 높은 형태다. 실제로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는 순간, 공간에 대한 가정은 추상적인 논의가 아니라 체감되는 판단으로 바뀐다. 그만큼 많은 생각이 한 번에 걸러지고, 남길 가치가 있는 것과 버려야 할 것이 빠르게 분리된다. 중요한 것은 완성도를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공통된 패턴이 드러난다. 부품의 조합이든, 구조의 실험이든, 플레이든, 방식은 달라도 모두 같은 지점에서 사고를 전진시킨다. 공간을 한 번 외부에 놓아보는 순간, 머릿속에만 있던 가정은 판단의 대상으로 바뀐다. 공간을 쓴다는 것은 최종 결과물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를 가늠할 수 있는 상태를 여는 일에 가깝다.
완성도라는 한계에 대해
한편 생성된 3D 자체의 완성도 문제는 또 다른 축에 놓여 있다. 현재의 3D 생성 AI는 메시 및 텍스처의 해상도, 토폴로지의 안정성, UV 구조의 가독성, PBR 재질 표현의 신뢰도 측면에서 여전히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메시나 텍스처의 퀄리티가 실제 제작 파이프라인에 부족하거나, UV가 face 단위로 과도하게 분절되어 수정과 재사용이 어렵고, 재질 표현 또한 물리적 맥락에서 설득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여기에 더해, 휴머노이드와 그 이외의 다양한 형태를 가진 객체들에 대해 일관된 리깅과 애니메이션을 생성하는 일 역시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관절 구조의 추정, 스키닝 웨이트의 안정성, 애니메이션의 자연스러움은 객체의 형태와 목적에 따라 요구 조건이 크게 달라지며, 범용적인 해법을 만들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성격이 비교적 분명하다. 이는 새로운 사고 방식을 요구하는 문제라기보다, 명확한 기술적 난이도를 가진 축에 가깝다. AI 기반의 지능형 리토폴로지, 자동 UV 언랩, PBR 텍스처 생성, AI 리깅과 애니메이션의 일반화는 이미 산업 전반에서 공통된 과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빠른 속도로 개선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각 단계가 불완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해결 방향 자체는 비교적 또렷하다.
중요한 것은 이 두 문제가 경쟁 관계가 아니라 병렬의 축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공간을 쓰는 능력은 사고의 차원을 확장하고, 완성도는 그 위에서 자연스럽게 축적된다. 기술은 결국 이 두 축을 동시에 요구받게 되며, 실제 현업에서의 가치는 이 둘이 함께 움직일 때 발생할 것이다.
공간을 쓰는 능력의 미래
공간을 쓰는 능력은 결과를 대신 만들어주는 기술이 아니다. 생각을 밖으로 꺼내 놓고, 맞는지 틀린지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에 가깝다. 이 판단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구현과 완성도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공간이 사고의 언어가 된다는 말은, 생각과 만들기가 더 이상 분리되지 않고 같은 흐름 안에서 이어진다는 뜻이다.
3D 생성 AI의 미래는 이 흐름 위에서 펼쳐질 것이다. 더 많은 것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방향이 아니라, 더 많은 생각을 공간 위에 올려보고 버릴 수 있게 만드는 방향으로. 그리고 나는 이 변화가 게임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다른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다고 본다. 완성 이전의 판단이 가장 자주, 가장 가혹하게 요구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그 첫 번째 시장이며, 첫 번째 문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