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환상방황> - EP2. 포카라행 야간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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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환상방황> - EP2. 포카라행 야간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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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Nepal
Published
January 2, 2023
Author
Jay

EP 2. 포카라행 야간버스

안나푸르나 서킷으로 떠나기 하루 전이다.

타멜 이후로부터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 마치 2일이 2주 같았다. 대혼돈의 야간버스. 션, 참, 필립과의 만남, 윈드폴로의 무사 도착, 즉흥적인 패러글라이딩 까지. 오늘 트레킹을 출발 했더라면 누리지 못했을 즉흥에 따른 경험들 역시 많았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동행과 함께 출발하는 일정이라면 오늘인 12/4 일요일에 트레킹을 출발했어야 했는데, 여러모로 우려스러운 부분들 때문에 하루를 더 쉬면서 준비하는 것을 택했다. 급하지 않게 생각한 것이 잘 했던 선택인 듯 하다.)
축제의 파김치 김치찌개, 진짜 미쳤다
축제의 파김치 김치찌개, 진짜 미쳤다
우선 야간버스를 타러가는 길부터. 먼저 축제에서 길리안 사장님이 끓여주신 김치찌개부터 먹고 출발하게 되었다. 축제는 한국에서 오래 일하셨던 네팔리 길리안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는 한식당인데, 집 근처에 있는 김치찌개집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파김치 베이스의 아주 끝내주는 국물..). 아마도 2일 연속으로 느끼한 음식들만 먹고, 노숙만 해와서 더 그런 듯 했다. 두 공기를 허겁지겁 해치우고 옥상에서 담배를 한대 폈다.
뒤이어 겪을 기상천외한 여정은 꿈에도 모른채.
 
야간버스를 타러 가는 길. 할렘이 따로 없다.
야간버스를 타러 가는 길. 할렘이 따로 없다.
길리안 사장님과의 잠깐의 대화를 마치고 야간버스를 타러 이동했다. 야간버스를 타기 위해 떠나는 길은 정말 대혼돈 그 자체였다. 초반 길은 그나마 인도로 되어있어 짐을 메고 낑낑대면 쉽게 걸을 수 있었다. 중간에 전통 결혼식을 시끄럽게 진행하고 있던 장면도 기억이 난다. 아무튼. 거리는 미친 듯이 시끄럽고, 혼란스러웠으며 누군가 말을 걸까 노심초사하며 길을 걸었다. 그리고는 강을 한 개쯤 건너고 다왔다 싶을 때 쯤 문제의 대로변이 나왔다. 옆길이 넓은 공사판이고 도로는 왕복 4차선 쯤 되어보이는.
첫번째 난관은 이 도로를 건너는 것이었다.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한 개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기억으로는 누군가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서 건넜다. 그리곤 약 700~800m를 걷는데 마치 할렘을 걷는 듯 했다. 불을 피우며 모여있는 부랑자 or 노숙자 or 공사장 인부들 (어느 카테고리에 해당하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무너져내린 도로. 마치 종말이 다가오는 세계의 거리 같았다. 그치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조금의 두려움과 경계심이 내가 여행을 하고 있음을 보다 현존감 있게 느끼게 해줬음이겠다. 겨우겨우 버스를 타는 곳이라고 전달받은 “Bhat-Bhateni Store”에 도착했다. 화장실이 급해서 4층까지 뛰어 올라갔는데, 정작 화장실은 바깥에 있었다(젠장). 이후 탑승할 곳을 찾기 위해 앞의 경찰관에게 물어보았는데, 이 앞에서 타면 된다기에 일단 스토어 앞 길가에 서 있었다.(제대로 못알아들었다. 아마도 건너편 사이드에서 타라고 한 듯하다.)
근데, 무언가 찜찜한 느낌이 남았다. 버스 탑승시간인 7시는 점점 다가오고 있고, 내겐 아무런 추가 정보가 없었다. 그때 오토바이를 탄 한 네팔인이 내게 말을 건넸다. 어디서 왔느냐고(왜 맨날 차이나부터 물어보는 것일까. 중국인 같이 생긴건가). 분명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느냐고 물어볼 것 같았다. 단호하게 korea. 한마디로 더이상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진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pokara. 짧게짧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반대편에서 타란다.
아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내게 그는 티켓을 줘보라고 했다. 아직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손으로 꼭 쥔채 건넸다. 그랬더니 다시한번 반대편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출발 시간은 몇시냐고 묻기에 7시라고 이야기했고, 시계는 6시 5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네팔인은 기어코 반대편이라고 이야기헀고, 일단 건넜다. 반쯤 망했다 싶었다. 이거 놓치면? 완전 그럴법 했거든. 뭐 허허벌판에 무슨 버스를 어떻게 타야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의심스러운 오토바이 탄 껄렁한 자식의 말을 믿고 길 반대편으로 건넌 것이었다. 안 건너면 해코지 당할까봐..
많은 생각, 걱정이 미친 듯이 스쳐지나가는 가운데, 버스 표를 확인하는 직원이 내게 다가 왔다. 살았다. 포카라행 야간버스는 스토어 반대편에서 타는게 맞았다. 껄렁한 자식에서선량한 네팔인으로 호칭이 바뀌는 순간. 그때부터는 조금 안심을 하고, 담배까지 한대 피웠다. 잠시 기다리다 보니 어디선가 시끌시끌한 영어가 들려왔다. 등장부터 요란한 인스타그램 스토리 촬영 소리,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은 션, 참, 필립이었다.
안내 표지판 하나 없는 버스 탑승하는 곳. 껄렁한 자식 덕분에 살았다.
안내 표지판 하나 없는 버스 탑승하는 곳. 껄렁한 자식 덕분에 살았다.
 

가장 시끄러웠던 인물은 션(Sean)이었다.

한동안 서양의 에너지를 잊고 있던 터라 그 에너지가 2배쯤 느껴졌다. 멍하니 넋놓고 서있던 내게 션이 가장 먼저 물었다. “Are you going to pokara?” 그렇다 대답하니, “Guys, We finally did it. We find the bus station!!”이라며 또 인스타그램에 담았다. 옆의 둘(참, 필립)은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함께 서있었고 션이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더니, 그때부터 3인방과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호주 멜버른에서(션, 참), 독일에서(필립) 의료 봉사차 네팔에 온 의대생들이었고 아마 학부는 마친 뒤 인턴 정도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이는 24, 25(필립)이었고,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션이 98년 1월 7일생이라는 것이었다.(나는 1월 8일로 딱 하루 차이나는 것이다.) 이걸로 션이 어찌나 떠들어 대던지, 아마 션이 죽으면 입만 둥둥 떠다닐 것 같았다.(물론 그 유쾌한 기운이 매우 좋았다) 한참을 나이로, 왜 부모들은 March에 아이를 많이 가지는 지에 대한 션의 뻘소리를 듣다가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즈음 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부모님이 한국 분이셨고, 호주 재외교포 2세로 보였다. 한국 이름은 김참밀(아직 정확히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보면 한글로 써달라고 해야겠다.). 호주 멜버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 중이다. 한참을 영어로 이야기 하다가 한국어 할 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 자기 말로는 부족하다 했지만, 유창하게 모든 것을 표현했다. 자기 동생도 고대에서 교환학생을 했으며 와본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19~20세 경에 호주로 이민하신 것으로 들었고, 참은 호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니까, 참은 Korean이긴 Korean이었다.
션은 한국인 여자친구가 있었다. 물론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참과 같이 부모님이 호주로 이민하셨고 그분들은 훨씬 한국에 오래계셨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름은 제니, 1월 1일에 션과 강남에서 함께 만났다.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말 많은 션을 잘 컨트롤 할 수 있는..) 마지막으로 필립. 필립은 독일에서 왔고, 어느 대학 어느 지역인지 들었지만 너무 어려워서 까먹었다. 나머지 둘에 비해 훨씬 조용했고, 침착했다(그러나 그는 치명적인 엉뚱함을 지닌 귀여운 로봇이었다.)
왼쪽부터 참,션,필립이다. 사진이 이것뿐이라 너무 아쉽다…
왼쪽부터 참,션,필립이다. 사진이 이것뿐이라 너무 아쉽다…
셋의 조합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는데, 쉴 새없이 떠드는 코미디언 션과 그런 션을 때로는 한심하게 쳐다보는 유학생 느낌 풀풀나는 참, 마지막으로 과묵하게 한 마디씩 툭툭 보태는 필립까지. 그들은 셋으로써 사랑스러웠고,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한 30분여간 떠들다가,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짐을 실얻는데, 딱 5분 뒤 그 버스가 아니란 걸 알았다. 정말 급하게 짐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정말 아찔한 위기였다. 그렇게 우리는 카오스 야간 버스에 탑승했다.
첫 1시간 동안은 분명 확신했다. 이 버스에서는 절대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서머싯 몸의 면도날을 꺼내 읽기 시작했고 다 읽었을 때 즈음 한국과 포르투갈의 월드컵 조별 예선이 시작되었다. 데이터가 정말 많이 끊기고, 네이버 놈들이 해외 시청불가를 걸어두어서 문자 중계로만 보게 되었다. 결과는 2대1 승리. 한국이 16강에 진출했다. 미친 결과였고, 속으로 혼자 예에 외칠 뿐이었다. 출발한지 약 3시간 쯤 지났을 11~12시 경 휴게소에 들렀다.
필립이 말을 먼저 걸어왔고,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와는 주로 트레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필립 역시 EBC(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여정을 떠난다고 이야기했다. 서로의 트레킹 일정, 여행 일정 등을 이야기 했고, 또 한편에서 션은 인스타를 찍고 있었다. 그렇게 한 10분여를 있다가 다시 버스에 올랐고, 나는 잠에 들었다. 확신을 깨고.
잠시 정차한 야간버스 휴게소
잠시 정차한 야간버스 휴게소
2시간에 한번씩 휴게소에 들릴 때마다 깨긴 했지만, 그 흔들리는 버스에서 6시간 정도를 잤다. 더욱 놀라운 것은 참이 출발 후 30분 쯤 이후부터 끝까지 잤다는 것이다. 비결을 묻고 싶었으나 참았다. 새벽 5시 30분경 버스는 포카라 레이크 사이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들과 내가 가는 방향이 반대임을 알고,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헤어졌다. 그들은 그날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캠프로 바로 일정을 떠나기로 되어있었고, 저녁에 혹시 저녁을 함께할 수 있다면 함께 하자고 약속한 뒤 헤어졌다.
포카라 페와 호수의 새벽녘
포카라 페와 호수의 새벽녘
나는 그길로 윈드폴로 향했다. 어둑한 새벽 가게들은 모두 닫혀 있었고, 기온은 5~10도 사이로 약간 쌀쌀했다. 그렇게 한 15분여를 걷다보니 윈드폴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지만, 철창이 내려가 있었다. shit. 그래도 찾은게 어디냐ㅡ 옆의 호숫가 벤치에서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일출을 구경했다.
오전 6시 40분경 윈드폴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