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환상방황> - EP1. 혼돈의 타멜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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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환상방황> - EP1. 혼돈의 타멜거리

Category
글쓰기
Tags
Writing
Travel
Nepal
Published
January 1, 2023
Author
Jay

EP 1. 혼돈의 타멜거리

네팔행 비행기에 올랐다.

감상이 어떻냐고? 설렘 반 두려움 반이 크다. 해외에서 잊혀진 이방인으로서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 설레고, 헤쳐나가야 할 미지의 것들이 두렵다. 공항노숙 부터 타멜거리를 찾는 것. 포카라행 야간버스를 예매하는 일부터 포카라에 도착해 윈드폴까지 이동하는 일까지. 또한 앞으로 무얼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한다는 사실까지.
네팔행 에어인디아
네팔행 에어인디아
나는 무얼하고 싶지? 감히 머리로 정리해 낼 수나 있는 질문일까. 디테일이 아닌 커다란 방향성, 동서남북 정도의 거시적인 방향성 정도만 수립해보자 다짐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경험의 폭이 그 사람의 선택지 혹은 한계를 늘려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해보고 싶은게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해봐야 한다. 무척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남들의 시선도 의식하게 되고(사실 그들은 내게 별 관심도 없을테지만), 두려움도 엄습해온다. 그러나 해봐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 문제는 그 끝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겠지만.
올 한해 창업에 도전했던 것에 대해선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아쉬움이 남지도 않는다. 다만, 결과를 내지 못해서 부끄럽고, 앞으로가 불안할 따름이다. 웃긴 것은 최선을 다했고 나는 그 이상 할 수 없었음에도,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남았다는 것이다. 왜 일까, 감정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약간의 오만과 죄책감이 뒤섞여 있었다. 처음부터 잘할 수 없고, 모자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만, 그리고 큰 투자금을 날려먹은 것에 대한 죄책감. 크게 두 가지 감정이 섞여 부끄러움이라는 새로운 감정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남아있던 감정의 정체를 이해하긴 했으나,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조금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 들고 온 서머싯 몸의 소설 한 권을 펼쳐 읽기 시작한다.
제목은 면도날, 술술 읽힌다
제목은 면도날, 술술 읽힌다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인도 뉴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방황하며 걷기를 1시간여, 드문드문 한국인들의 눈치를 슬쩍씩 봐가며 공항에서의 14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내일의 일정이 살짝 걱정된다. 내일은 카트만두 공항에 내려 네팔에 입국하고 타멜거리로 이동, 포카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크게 두 가지의 퀘스트다. 1. 타멜거리로 이동하기 2. 포카라로 이동하기
8번 게이트 옆 라꾸라꾸
8번 게이트 옆 라꾸라꾸
철저한 이방인으로서 잘 생존해낼 수 있을까. 또 여행이 끝나면 내가 품고왔던 물음에 답할 수 있을까? 지금 맞은 편에는 한국 분으로 추정되는 분이 계신데, 말을 걸지 말지도 고민된다. ‘어디로 가시냐’, ‘카트만두에 가시냐’, ‘이후 일정은 어떻게 되시냐’, 뭐 이런 얘기를 해야하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멍하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잠이 조금 필요한 것일지도. 맞은편 분도 어지간히 심심하시겠지. 14시간이라니. 결국 말 거는 일은 포기하고, 8번 게이트 옆 라꾸라꾸에서 잠을 청해본다.
 

타멜 거리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는 중이다.

네팔 트리부반 공항에 무사히 도착한 뒤, 비자를 발급받는 중 한국인 분들께 말을 걸었다. 인도에서 네팔로 향했던 에어인디아 비행기에 한국인은 총 (나 포함) 8명이 있었다. 커플 2쌍과 봉사활동을 온 2명, 그리고 나처럼 홀로 온 한 분. 다들 목적지를 향해 잘 출발했고, 포카라로 무턱대고 향하는 사람은 홀로 온 두 사람 뿐이었다. 그 분께서 비행기를 타고 간다고 하시기에 가격이나 알아볼 요량으로 따라나섰고, 길을 헤매다 겨우 찾아 들어간 네팔 국내선 공항에서 부르는 포카라행 가격은 120$. 가격도 가격이고 타멜거리를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컸기에 깔끔하게 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심했다.
택시를 타려고 이동하던 중, 한 명이 말을 걸어온다. 타멜로 가는지 물어본다. 흥정의 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얼마냐 물었더니 800 루피라고 한다(1루피에 10원 꼴이니, 루피x10 으로 계산을 하면 한국식으로 계산하기 편하다). 내가 가고 싶은 가격은 650 루피 정도, 그래서 500 루피를 불렀다. 그랬더니 노발대발하며 저기 Pre-Paid 택시는 1,000 루피를 받는다며, 800 루피 아니면 안 간단다. 그래 그럼 말아ㅋㅋ 하고 나는 내 갈길 가려는데 계속 쫓아오며, 얼마를 원하냐 자꾸 물어본다. 500 루피라 말하지 않았느냐, 그랬더니 아니 그건 좀 오바란다. 그래서 600 루피까지 괜찮겠다 말하니, 650 루피에 가잔다. 그래 이거지. 선심쓰는척 ‘Okay 650’ 를 말하고, 택시에 올랐다.
택시에서 바라본 타멜거리 가는길
택시에서 바라본 타멜거리 가는길
택시를 타는 내내 650 루피에 가기로 이야기 했다는 점을 계속 상기시켰다. 또 도착해서 딴소리 할까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다행히도, 650 루피에 안전히 타멜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첫번째 퀘스트를 잘 클리어 해냈음이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타멜거리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도 가장 유명한 거리이다. 히말라야 관광이 전체 소득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만큼, 타멜거리 곳곳에는 트레킹 샵, 트레킹 여행사 등이 즐비하다. 나는 타멜거리 구경도 구경이나, 포카라행 야간버스의 예매가 필요했기에 한국인들을 주로 대상으로 한다는 제이빌 여행사를 찾아가 보았다. 사실 여행사가 야간버스 티켓까지 취급하는지는 몰랐고 그냥 예매 위치나 알아볼까하여 무턱대고 찾아간 것인데, 이게 웬걸. 야간버스 티켓을 15$에 바로 끊을 수 있었다. 오늘은 모든 일정이 생각보다 술술 잘풀린다. 걱정해두길 잘한건가.
모모스타, 버팔로 뗌뚝과 치킨모모
모모스타, 버팔로 뗌뚝과 치킨모모
예매 이후에는 모모스타라는 로컬 맛집에 들렀다. 첫 네팔 음식을 시도하는 것이었는데, 무난하게 미리 찾아두었던 버팔로 땜뚝과 치킨 모모를 시켰다. 실수한 것은, 프라이드 모모를 원했는데, 주문을 스팀으로 잘못했다는 건데 뭐 그럭저럭 잘 먹었다. 맛도 역시 그럭저럭, 특별히 감동은 없었다. 이제 시간은 낮 12시. 근데, 저녁 7시까지 뭐하지..?
 

지금은 16시 25분. 타멜거리를 둘러보기를 잘했다.

혼돈의 타멜거리와 만트라 그림들
혼돈의 타멜거리와 만트라 그림들
가장 혼란스러운 거리에서 어쩌면 평화가 조금은 찾아오기도 했다. 여러 생각들이 얽혀 복잡한 머릿속 보다도 더 너저분하고 혼란스러운 바깥의 풍경이 역설적으로 내면의 소란을 잠재워 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지나가다 우연히 만트라, 옴마니 반메훔을 설명하며 만트라를 내게 판매한 호객 꾼에게는 이야기 삯을 지불했다. 호객 행위에는 절대 당해주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지만, 30분 정도 문화를 이야기 해준 값으로 생각하기로 하며 1,000루피를 선듯 건넸다. 만트라 그림은 아마 덤이겠다. (어디에 둘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 혼란하고 너저분한 도시에서도 모든 곳에 데이터가 터지고 아이폰이나 갤럭시를 들고 있다. 페이스북 메신저가 깔려있고, 구글 지도만 있으면 모든 곳을 찾아갈 수 있다. 새삼 세상이 달리 보인다. 새로운 카메라 필터를 사용하는 느낌이랄까.
모든 곳에 데이터가 터진다
모든 곳에 데이터가 터진다
사업을 정리하고 이곳의 사진들을 찍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또 다른 종류의 부끄러움이다. 열심히 살고 있지 않노라는 그런. 남들이 나를 ‘왜 저러고 있나’ 바라볼 것 같아 두렵다. 그만둠, 포기, 그에 따른 부끄러움. 새로운 방향 정립에의 갈등. 써보니 느껴지는 것은 역시나 “그만둠, 포기” 따위에 갇혀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부끄러움이 느껴지고 설명해야 할 때마다 답답함과 화끈거림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런 류의 감정들에 갇혀있는 것은 내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